세계의 문명을 찾아 떠나는 박경철의 그리스 기행! <문명의 배꼽, 그리스> 리뷰

  

 

세계의 문명을 찾아 떠나는 박경철의 그리스 기행!

<문명의 배꼽, 그리스> 리뷰

여행_일이나 유람을 목적으로 다른 고장이나 외국에 가는 일
기행_ 여행하는 동안에 보고, 듣고, 느끼고, 겪은 것을 적은 것

박경철의 <문명의 배꼽, 그리스>문명을 찾는다는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떠난 그리스 여행에서 겪은 일을 통해 느낀 것, 알게 된 점을 기록한 책이다. 예전에는 그리스라면 ‘한번쯤 가보고 싶은 나라’라는 생각이었지만 요즘은 ‘유럽발 글로벌 경제위기의 중심’이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인간이 기나긴 세월을 통해 쌓아올린 역사와 문명의 현장으로서의 그리스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였을까박경철의 <문명의 배꼽, 그리스>를 더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었다.

<문명의 배꼽, 그리스>는 신화 이야기가 아니다.단정한 표지와 왠지 학문적인 책의 제목때문에 무거운 내용이 잔뜩 들어있을 거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다 읽은 지금에야 하는 말이지만 책을 다섯 페이지 정도 넘겼을 때, 이런 선입견으로 책을 시작한 것에 대해 박경철 저자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문명의 배꼽, 그리스>는 서점의 한 코너를 차지하고 있는 여행기보다는 진지하지만 교과서보다 재미있는, 그리스의 문명을 알고 이해하겠다는 확실한 목적을 가진, 정말 재미있는 기행 이야기다.

저자 박경철은 설명과 비유에 강하다.사실 나는 그의 이야기를 처음 읽기 때문에 그 유명한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 <시골의사의 부자경제학>과 같은 이전의 책에서 그가 어떤 식으로 독자의 공감을 얻어냈는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문명의 배꼽, 그리스> 이 한 권만으로도 저자 박경철의 글쓰는 능력을 충분히 알 것 같다. 아무래도 그리스 지역에 대한 내용이기 때문에 ‘펠로폰네소스’, ‘테르모필레’ 등 익숙치 않은, 그야말로 외래어가 많이 등장해서 혼란을 느끼기도 했지만, 그 특유의 설명기법덕분에 책의 내용을 이해하는데는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 박경철 저자의 비유는 곧 읽는 사람의 공감을 이끌어낸다. 마력의 비유솜씨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나는 그리스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가진 사람도 아니고 그리스의 문명을 파헤치기 위해 <문명의 배꼽, 그리스>를 읽은 것이 아니었다. 그냥, 읽을수록 더 빨리 끝까지 보고 싶었을 뿐이다. 책을 읽으면서도 ‘뭐지, 무슨 말이지..’하는 생각 뒤에는 바로 백퍼센트 공감할 수 있는 비유가 튀어나오곤 했다. 덕분에 내 책은 온통 밑줄 투성이에 연필자국이 얼룩덜룩 남았다.

 

사실 이방인의 눈으로 이 아크로코린토스에 서린 겹겹의 역사를 온전히 보고 느낄 수는 없다. 광화문을 바라보는 외국인의 귀에 명성황후를 시해하기 위해 경복궁 담장을 넘던 낭인들의 발자국 소리가 들릴 리 없고, 남한산성에 오른 외국인의 가슴에 백성들의 처절했던 울음과 삼전도의 원한이 아로새겨질 리 없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코린토스의 성채에서 겹겹의 장막을 들춰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400페이지가 훌쩍 넘는 <문명의 배꼽, 그리스>를 질리지 않고 읽을 수 있었던 이유하나는 ‘이야기의 흐름’이 아니었을까 싶다. 한참 맛들려서 읽기 시작하던 초반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가 아크로코린토스성채의 외벽에 서있을 때, 돌 틈으로 뱀 한 마리가 지나갔고 이 뱀 이야기는 고대 숭배의 대상, 이브를 홀렸던 이야기까지 이어진다. 박경철 저자가 여행하며 겪었던 일들 사이사이에 적절하게 문명 이야기를 넣어두었기 때문에 지겹다거나 어렵다고 느껴지지 않는다는 얘기다. 왠지 당한듯한 기분이 들기도 하지만 어렵지 않게 그리스의 문명을 이해할 수 있어서 오히려 기분이 좋다.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스파르타 이야기다.군사강국 스파르타, 노예제도, 끝까지 왕정을 고수한 정치제도, 교육이나 법제도 등 스파르타에서 나오는 얘기는 무수하지만, 순전히 개인적인 취향으로 <문명의 배꼽, 그리스>에서 한 부분을 꼽으라면 나는 318페이지에서 시작되는 “우정” 이야기다.

 

저자가 열심히 전해 준 다른 모든 문명 이야기를 제치고 굳이 그리스에서가 아니더라도 느낄 수 있는 우정을 꼽아서 미안한 마음이지만, 문명이라는 것 자체가 역사책에 쓰여지니 딱딱한 이야기가 아니니까. 먼저 살았던 사람들이 먹었던 음식, 입었던 옷 그리고 그들이 나누던 얘기들까지, 한명 한명의 삶이 모이고 그 시간이 모여 문명이 이루어지는 게 아닌가. 특히나 그리스인을 이해하는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가 우정이라고 하니 어쩌면 난 <문명의 배꼽, 그리스>의 핵심을 캐치한 게 아닐까.

스물네 살 때 처음 방문한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소.25년만에 다시 찾은 그의 묘소에서 저자 박경철은 한국에서처럼 술을 올리고 큰절까지 한다. 그 모습을 보던 그리스인 한 명이 호기심을 갖자 경의를 표하는 풍습이라고 설명하고 “그는 내게 영웅입니다”라고 말한다. 그리스인은 자신의 택시로 크레타 섬에 있는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흔적들을 안내해줄 뿐 아니라 훌륭한 저녁 식사까지 대접한다. 박경철 저자는 고마움의 표시로 사례비를 준비하지만 그리스인이 한사코 받지 않자 저자는 왜 자신에게 이런 친절을 베풀었는지 묻는다.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그리스인 본인에게도 영웅이라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친구라고.

 

박경철 저자는 <문명의 배꼽, 그리스>에서 그리스인의 이중성에 대해 태양같은 뜨거움과 말라비틀어진 무기력함이 공존한다고 얘기했다. 여행자에게 한없이 친절하지만 불법체류자에겐 벌건 대낮에도 돌을 던지기도 한다고. 그리스인의 이중성은 정복에 성공한 침략자지만, 다른 이에게 정복당하지 않기 위해 한 겹 두 겹 성벽을 쌓고 쌓았던, 그리스의 문명 그 자체가 아닐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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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Responses to 세계의 문명을 찾아 떠나는 박경철의 그리스 기행! <문명의 배꼽, 그리스> 리뷰

  1. 여강여호말하길

    그리스 문명을 얘기할 때 신화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겠지요. 그동안 이윤기 선생의 신화 이야기에만 푹 빠져있었는데….신화를 단순히 꾸며낸 이야기가 아닌 인류 역사의 정신적 발자취라고 믿는 독자라면 꼭 한 번 읽어보고 싶은 책이네요.

    • 악동키치말하길

      @여강여호님 박경철 저자의 < 문명의 배꼽, 그리스>는 신화만을 다루는 책이 아니라는 점에서 더 재미있게 봤던 거 같습니다. 하긴, 말씀하신대로 신화를 “인류 역사의 정신적 발자취”라고 본다면 기행+신화 이야기가 맞네요 ^^ 아무튼 저는 정말 재미있게 읽었기 때문에 강력추천입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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