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모퉁이 카페> 서글프지만 단호한 사강의 비극들

  

 

삶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겪는 불운이 담긴 사강의 단편 소설집. 사강의 소설보다는 에세이가 좋았지만, 사강의 장편소설보다는 단편소설이 더 마음에 닿는다. 당황스러울 정도로 짧은 분량의 소설도 여러 편 있는데, 몇 문장 되지 않는 글로도 등장 인물의 캐릭터가 그려지고, 그들이 겪는 서글픔이 고스란히 느껴진다는 것이 신기하다. 번역본으로도 단순하고 꾸밈 없어 보이는 문장들은, 그 담백함 덕에 인물들이 처한 상황들의 이미지를 빠른 직구로 던져주는 듯하다. 각각의 이야기들은 그간 에세이를 통해 보았던 사강의 삶을 곳곳마다 닮아 있는 것 같고, 아마도 그래서인지 전부 외롭다.
 
 
기분 탓일 가능성이 크지만, 이야기의 인물들이 모두 죽어가는 사람들 같았다. 실제로 죽어가는 사람들이 많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사랑에 겨워 키스를 주고 받는 사람들마저도 시들어가는 그들 삶의 한 순간에 불과한 것처럼 보였다. 남녀의 로맨틱한 사랑이 오래 지속되기란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을 지녔기 때문일지, 부유층 사교계에 어느 정도 지쳐 있었을 사강을 떠올리며 읽었기 때문일지는 모르겠다. 이유는 스스로도 가려내기 애매하지만, 끝까지 냉소적인 시선을 거두지 못했다. 그 덕에 연민을 느끼진 못했지만 무너져내리는 삶의 순간만큼은 공감했다.
 
 
삶이 끝났다고 생각되는 순간, 여러 가지의 반응이 있을 수 있겠지만, 사강의 소설 속 인물들은 어떠한 선택을 하든 단호하다. 비극적인 이야기들이지만 슬프지 않은 것은 이런 단호함 때문인 것 같다. 무엇이 됐든 미련 없이 주저하지 않고 결정을 내리는 태도들이 마음에 들었다. 그들의 비극은 꿈에서도 겪고 싶지 않지만, 결단력과 추진력은 매일 반복하고 싶다. 설마 일상이 2배속으로 재생되는 기분이 들려나. 그래도 지지부진한 요즈음의 내 일상을 보아서는, 한동안은 필요하다.

 

 
 
 
 
제롬이 라디오를 켜자마자 카바예의 풍성한 목소리가 차 안을 가득 채웠다. <토스카> 중 유명한 곡이었다. 제롬은 눈물이 차오르는 것을 느끼고 놀랐다. 무의식적으로 와이퍼를 작동시킨 뒤에야 시야를 가리는 것이 가을 날씨가 아니란 걸 깨달았다.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날씨도 좋고, 이 장소도 좋고, 이 도로도 좋고, 이 차도 좋다. 그리고 특히 내 뒤에 앉아 있는 갈색 머리 여인이 좋다. 카바예의 목소리를 나만큼 즐기고 있는 내 여자가 좋다.' (15쪽, <비단 같은 눈>)
 
 
"우리는 역시 보잘것없는 존재야." 그는 씁쓸했다. 스무 살에 혐오해 마지않던 진부함들을 계속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게 피곤했다. (59쪽, <누워 있는 남자>)
 
 
앞에 앉은 부인의 입술에는 이미 외국인의 말실수를 너그럽게 받아들이겠다는 웃음이 번져 있었고, 레티시아는 실수를 바로잡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기분이 나빴지만 그런 일로 짜증을 내는 건 어리석은 일이고, 세 시간 뒤에 샤를에게 어떻게 말을 꺼낼까 고민하는 게 더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152쪽, <왼쪽 속눈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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