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여애반다라> 서러운 것이 생임을 이순의 시인이 말하다

  

 

 

 

 

제목부터 시선을 끌어 들여다보니, 오랜만의 이성복 시인의 시집이었다. 시라고는 교과서에서 접하던 것 외에 쉬이 다가가지 못하던 스무살 남짓, 이성복의 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와 <아 입이 없는 것들>을 읽고 시인의 비관적인 시각에 적잖이 당혹스러워 했다. 사회적 이슈나 연애시만 보아오던 내게 관념적인 시는 너무 어려웠다. 그때의 서평에 '삶과 나를 이간질하는 시'라고 적어놓은 것을 보니 설렘보다는 불편한 낯섦이 더 강렬했던 것 같지만, 한 편으로는 어떤 문이 열리고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기분이어서 설레기도 했다.
 
 
10년 만에 내놓은 이성복 시인의 시집 제목은 '래여애반다라(來如哀反多羅)'. 신라시대에 불상을 짓기 위해 백성들이 일을 하며 불렀다는 향가에서 따왔다는 이 말은, 현대어로 해석하면 '오다, 서럽더라' 정도가 된다고 한다. 시인은 이것을 풀어 '이곳에 와서(來), 같아지려 하다가(如), 슬픔을 보고(哀), 맞서 대들다가(反), 많은 일을 겪고(多), 비단처럼 펼쳐지고야 마는 것(羅)'이라고 말한다. 60이 된 시인은 자신의 생을 한 글자에 10년 씩 나누어 이 시집에 모았다. 시집 한 권에 시인의 지난 생이 오롯이 담긴 것이다.
 
 
처음 시인을 만났을 때 느꼈던 우울은 이번에도 피할 수 없었다. 생의 절망에 대한 담담하면서 자조적인 어조도 여전하고, 회벽을 바른 검붉은 땅의 이미지도 그대로였다. 장마다 시인의 의도대로 각 시기의 생을 담아서인지 조금씩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비관적인 분위기는 매한가지다. 그럼에도 시인의 글을 계속 찾아 읽게 되는 것은, 다행이 시인이 그려낸 절망들이 완전히 주저 앉는 패배의 절규가 아니라, 인간이라면 받아들여야 하는 진실을 밝혀낸 현자의 고백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성복 시인의 시를 읽으면 내게 닥친 삶의 고통이 보편성을 지니게 된다. 그러면 조금, 견딜 만해진다. 시인의 앞으로의 시가 어떤 모양으로 그려질지 나로서는 감히 짐작하기 어렵지만, 그의 시 세계를 꾸준히 지켜주었으면 하는 작은 바람을 가져본다.        
 
 
 
(…)
지금 내 생은 서리 내린 야산
무밭에 겅중겅중 솟은 순무 같구나
 
그거 한번 뽑으려면
동네 사람 다 달라붙어야 하고,
 
그게 쑥 뽑혀 나가면
동네 사람들 죄다 엉덩방아 찧으며
멀쩡하게 생긴 게 사람 잡는다고 투덜거리는,
 
속속들이 바람 든 순무 같구나
이제 내 어리석음은 (24쪽, '선생 1')
 
 
대형병원 유리창에 비친 맞은편 건물의 그림자처럼
이 생은 도무지 떼어낼 수가 없다는 것일까,
푹푹 찌는 주차장 너무 불덩어리 해가 꺼지기 전에는……
빽빽한 느티나무 속에서 매미가 울고, 소리가 울고,
소리가 죽고, 그 다음엔 넌 또 어떻게 할 건데?
그래, 저기 지아비가 잡은 손을 뿌리치고 여인은 퍽퍽
울면서 중환자실로 달려간다 너무 늦은 것을 향해
달려간다는 것은 저런 것일까? 주사라도 맞았으면,
뽕이라도 맞았으면, 내가 못 맞는다면 생이여, 너라도
맞았으면…… 생이여, 나는 또 구름카드를 공중전화
투입구에 넣고 통화를 시도한다 아무도, 아무 데서도
받지 않는 전화에 건성 말대꾸하며 나는 중얼거린다
중얼, 중얼거리면서 생이여, 굳게 닫힌 네 이빨 사이로
묽음 미음을 밀어넣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어여쁘디
어여쁜 나의 생이여, 어여 어여 뜨거운 물수건 꼭 짜서
끈끈한 네 이마를 닦아주면 넌 좋아할까? 어여, 어여
집으로 가라고 재촉하는 너는 그러나 내가 제 자식임을
기억하지 못한다 미친 척하고 어머니! 한 번 불러줄까?
불러주면 좋아하기나 할까? 붉은 땡볕 아래 뜨거운 팥죽
쑤어 새알이라도 먹여줄까? 솥 걸고 개 잡아 꺼덕거리는
'만년필'이라도 꽂아줄까, 네 입에, 아니면 핏발 선 네 눈에?
이래저래 생사가 복잡한 나는 지글거리는 아스팔트 위의
어린 다람쥐처럼 이 생의 저변을 콩닥거리며 뛰어 다닌다 (85~87쪽, '나의 아름다운 병원')
 
 
현대식 빌라를 방불케 하는 식용개
사육장에는 멀리서 보아도 누런 개,
흰 개, 검은 개들이 쇠창살 너머로
머리를 디밀었다가, 뺏다가, 한 녀석
 
킹킹거리며 딴 놈들 코러스 하고
또 한 녀석 울부짖으면 딴 놈들
자지러진다, 숨넘어간다, 그러다 곧
적막은 서녘 하늘보다 붉고 푸르고
 
아까부터 사육장 젊은 내외는 부부
싸움을 하는 듯 언성이 높다 책가방 멘
아이가 돌아오면 남자는 쌍심지 켜며
 
사료 바케스 들고 사육장 안으로
들어가고, 여자는 수도를 틀어 상추와
파를 다듬는다 어떻든 먹여야 산다 (102쪽, '청도시편 4')
 
 
(…)
하지만 수건! 그거 정말 무시 못할 것이더라
1999년, 당뇨에 고혈압 앓던 우리 장인 일 년을
못 끌고 돌아가시고, 2005년 우리 아버지도
골절상 입고 삭아 가시다가 입안이 피투성이
되어 돌아가셨어도, 그분들이 받아온 옛날
수건은 앞으로도 몇 년이나 세면대 거울 옆에
내걸릴 것이고, 언젠가 우리 세상 떠난 다음날
냄새 나는 이부자리와 속옷가지랑 둘둘
말아 쓰레기장 헌옷함에 뭉쳐 넣을 것이니,
수건! 그거 맨정신으로는 무시 못할 것이더라
어느 날 아침 변기에 앉아 바라보면, 억지로
찢어발기거나 태워 버리지 않으면 사라지지도 않을
낡은 수건 하나가 제 태어난 날을 기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제나 저제나 우리 숨 끊어질
날을 지켜보기 위해 저러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111~112쪽, '소멸에 대하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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