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 거리 / 저녁의 게임 / 병어회 / 겨울의 환 외 (20세기 한국소설 33)> 여성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

  

 
중학생 때 즈음까지는 '여성스럽다'는 말을 저만 아는 공주님 같다는 말 정도로 생각되어 끔찍이도 듣기 싫어했다. 또래의 여성스러운 애들이 줄곧 보여주던 잘난 체와 도도함이 싫었던 건지, 여자라면 여성스러워야 한다는 어른들의 요구에 대한 반항심이었던 건지는 모르겠다. 유독 더 남자 아이들과 몰려 다니기를 좋아했고, 소위 말하는 센 척도 서슴지 않았으며, 치마를 입는 것은 교복 치마를 마지막 타협선 정도로 생각했다. 내 기억에는 고등학교에 입학 할 즈음부터, 아마도 이성에 대한 마음이 조금 더 여물 즈음부터, 여성스러움의 아름다움을 이해하기 시작한 것 같다. 간사하게도 그 이후로는 여성스러움을 내비칠 수 있는 모든 징표를 갖고 싶어했다. 워낙 어릴 때 유난을 떨어서인지 지금도 아주 여성스러운 것에 대해서는 불편함을 느끼지만, 20대 중반을 갓 넘긴 지금은 여성스럽다는 것이 하나의 훌륭한 칭찬임을 이해할 수 있다.
  
여자로서 나이들어 간다는 것은, 여성의 삶을 산다는 것은, 이런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게 아닐까. 내가 나이를 조금 더 먹는다면 성숙한 여자의 삶을 통감하게 될 것이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 어머니로서의 여성의 삶을 깨닫게 될 것이다. 단계적으로 여성의 삶을 알아가는 게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 같다면, 오정희와 이순과 김채원의 소설을 읽어도 좋을 것 같다. 오정희의 소설들은 '중국인 거리', '저녁의 게임', '옛 우물', '동경' 순으로 유년부터 노년까지의 여성의 삶을 보여준다. 이순과 김채원의 소설도 여성의 삶을 다양한 연령대의 시각에서 예리하게 그렸다.
  
오정희의 문장이야 언제 보아도 아름답기에, 이번 기회에 가장 마음에 담게 된 작가는 이순이었다. 특히 '병어회'는 79년도에 쓰였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요즈음 2-30대 중산층 여성들의 심리를 적확하게 묘사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을 앞둔 상황에서 남편의 경제적 상황을 걱정하는 주인공의 심리에 일정 부분 공감을 하면서, 동시에 나의 속물적임 모습을 마주하는 것 같아 뜨끔뜨끔했다. 시대적 한계인 건지, 지나친 가족주의를 보여주기도 해서 구시대적이라는 찝찝함이 남기는 하지만, 그 또한 가족애가 부족한 오늘날에 필요한 생각일 수도 있을 것 같다. 맛깔나는 구어체 서술도 일품이어서, 오정희의 '옛 우물'에 견줄 만큼 마음에 들었다. 여성의 삶을 산다는 것이 아름답지만은 않을 테지만, 특권 또한 있는 것 같다. 적어도 이런 소설을 공감할 수 있으니.
 
 
무릎을 세우고 앉아 그 사이에 깊이 고개를 묻으면 함성은 병의 좁은 주둥이에 휘파람을 불어 넣을 때처럼 아스라하게 웅웅대며 들려왔다. 땅속 깊숙이에서 울리는, 지층이 움직이는 소리, 해일의 전조로 미미하게 흔들리는 물살, 지붕 위를 핥으며 머무르는 바람. (63쪽, 오정희, '중국인 거리')
 
 
도도가 무엇인가를 묻자 아들은 사백 년 전에 사라진, 나는 기능을 잃어 멸종된 새였다고 말했었다. 누구나 젊은 한 시절 자신을 전설 속의, 멸종된 종으로 여기지 않겠는가. 관습과 제도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두려움과 항거를 그렇게 나타내지 않겠는가. (107쪽, 오정희, '옛 우물')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나란히 누워 잠들지만 각각 꾸었던 지난밤의 꿈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당신은 나를 어떻게 견디나. 나는 때때로 마음속으로 그에게 물음을 던지지만 그것은 똑같이 나 자신에게도 유효한 물음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한 번도 그러한 말을 한 적이 없다. 잠수에 자신이 없는 사람은 어떤 경우에나 수면 아래로 내려가면 안 될 것이었다. 익사의 위험이 따르므로. (122쪽, 오정희, '옛 우물')
 
 
추억이란 물속에서 건져낸 돌과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물속에서 갖가지 빛깔로 아름답던 것들도 물에서 건져내면 평범한 무늬와 결을 내보이며 삭막하게 말라가는 하나의 돌일 뿐. 우리가 종내 무덤 속의 흰 뼈로 남듯. 돌에게 찬란한 무늬를 입히는 것은 물과 시간의 흐름일 뿐이라는 것을 안다. 그러나 나는 종종 이즈음에도 옛 우물과 금빛 잉어의 꿈을 꾼다. (139쪽, 오정희, '옛 우물')
 
 
그렇게 시작되어 어느새 3년이 지났습니다. 횟수로 따지면 불과 서른 번을 넘지 못한 것 같습니다. 만나는 일을 두 달이고 석 달이고 건너뛸 때도 있었으니까요. 그러나 그런 일은 별로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누군가 있다는 것과 없다는 것은 크나큰 차이이지요. 오로지 그것이 중요하지요.
만나지 않아도 누군가 저기 어디 있다는 것만으로도 저의 생활은 달라지며 매일매일 노력하게 됩니다. 손지갑을 챙겨 들고 저녁에 시장에 나갈 때의 행동 하나만 보더라도 예전과 다릅니다. 감자를 벗기는 일, 빨래를 너는 일 하나에도. (315~315쪽, 김채원, '겨울의 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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