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 카레니나> 획기적 연출과 애런 존슨 덕에 폭발한 비주얼

  

 

이로써 몇 번째 <안나 카레니나>인지 세고 싶지도 않다. 내 기억만 해도 어렴풋이 소피 마르소가 떠오르는데, 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얼마나 많은 안나와 브론스키들이 있었을까. 불륜을 사랑이라 말하는 안나와 브론스키의 이기심도 외면하고 싶고, 같이 일군 농장에서 나누고 살자는 톨스토이의 사회주의도 영 재미가 없지만, 나는 또 개봉 첫 주에 <안나 카레니나>를 예매하고 말았다. 객석에는 여자들이 많기는 했지만, 딱히 여성 취향 영화는 아니다. 심플하게 장르만 보고 생각하면 남성 취향의 <장고>와 여성 취향의 <안나 카레니나>라고 보기 쉽지만, 예상 외로 <안나 카레니나>에서 단 한 번에 그치기는 했어도 임팩트로는 막강한, <장고>보다 더 끔찍한 장면이 나왔고, 여성의 자유연애를 다루고 있다 해도 불륜을 더 불편해하는 것은 오히려 여자들인 경우가 많지 않은가. 또 불륜의 말로가 아주 눈물 겨운 데다가 결국은 여성의 부정을 탓하는 스토리인 셈이니, 장르나 스토리만을 두고 <안나 카레니나>를 ‘여자들이 좋아할 만한’ 영화로 보기엔 무리가 있다. 원작에 비해 카레닌이 너무 성자로 비춰지고, 브론스키가 무척이나 철부지처럼 보이기 때문에 안나의 불륜이 더 못 할 짓으로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단 말이지.

 애초에 이 영화의 스토리에 기대를 거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결말까지 너무 많이 알려진 이야기이고, 톨스토이의 사상에 동의하는 사람은 오늘 날 그리 많지 않을 테니까. 나로서는 처음부터 내용에는 반감에 가까운 감정을 갖고 있었기에, 워킹 타이틀 제작에 조 라이트와 키이라 나이틀리의 검증된 조합에 기대를 걸고 있었다. 대만족을 한 <장고>를 본 직후에도 이 영화에 꽤 만족할 수 있었던 것은 기대의 초점이 여기에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조 라이트 감독과 키이라 나이틀리가 <어톤먼트>나 샤넬 광고만큼의 매력을 뿜어내진 못했지만, 조 라이트가 폐극장에서 연출한 아름답고 독특한 형식과 키이라 나이틀리의 섬세한 감정 연기는 두 번 세 번 갈채를 보내기에 충분했다. 의상으로 상을 받은 만큼 화려한 연출 속에서 빛나는 의상들은 셀 수 없이 다채로웠고, 무대에서 화면을 전환시키는 장면들은 그 아이디어가 가히 천재적이라 할 만했다. 또 키이라 나이틀리 덕에 사랑에 빠져 황홀해하는 안나와 파국으로 치달아 절망에 빠진 안나까지 두 극단의 안나가 완벽하게 표현됐다.

 

연출과 연기 못지 않게 만족한 것이 또 하나 있었으니, 또 하나의 기대 초점이었던 애런 존슨. 몇 년 전만 해도 주드 로라면 제쳐두고 봤었는데, 주드 로의 노화는 안쓰러워서 어쩐담. <가타카>가 마치 예언이라도 됐던 마냥 이젠 늘 어딘가 힘들어 보인다. 키이라 나이틀리의 노화도 사실 무시할 것은 못 되는 데다가, 살이 더 빠져서 턱이 더 자라보이기까지 하는 판국인데, 주드 로 옆에 있으니 주드 로가 마치 말년에 어리디 어린 신부를 맞은 느낌. 어쨌든 하려던 말은, 이제는 애런 존슨에 기대를 했고, <나는 조지아의 미친 고양이> 시절 눈호강 했던 것과는 또 다른 느낌으로 설레며 보았다는 것. 첫 성인 연기에 도전했던 <노웨어 보이>에서는 반항기 짙은 존 레논의 어린 시절의 역할이었기 때문에 아쉬운 감이 없지 않았는데, 이번 역은 제대로다! 사랑에 눈 먼 철 없는 청년이지만 늠름하고 섹시한 군인을 잘 소화해 냈으니, 성인 연기자로서의 연기 변신에 제격이지 싶다. 영화를 보고 나온 후 화장실에서 여자들이 하는 얘기가 하나 같이, ‘그런 남자랑 어떻게 살아, 나라도 다 가진 젊은 애한테 가고 싶지’였던 걸 보면, 애런 존슨이 멋쟁이 연기를 잘 한 것일 테지. 결론은, 이 영화, 비주얼 폭발.

 

 

댓글 남기기



 

로그인후 추천할 수 있습니다.

로그인을 하시려면 여기를 클릭해주세요.